[X세대 비망록]
01.멀어져 간다.
커튼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잠을깨웠다.
10시... 시계를 보고선 부엌으로 가 늦은 아침을 챙겨먹는다.
어제밤 늦게까지 만화책을 보고 잔 때문인지
부시시 한 모습으로 거울을 본다.
거울을 보며 머리가 헝클어진모습이 피식 웃음을 짓게한다.
이 얼마만의 여유로운 아침인가.
늦잠을 자도, 밤늦게까지 만화책을 봐도 학교를 가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다.
12년을 대학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새벽부터 새벽까지 공부한 댓가이리라.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는 그의 이름은 서진우 ...
얼마전 학력고사 시험을 마치고 오늘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3학년 후반에 갑작스레 슬럼프가 찾아와 배치고사를 망치고 덕택에 원하던 학교와 과에 지원은
못했지만 다행히 시험을 잘본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물론 시험이 쉽게 출제되었기때문에 다른사람도 다 잘쳤을 것이다.
그래도 웬지모를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친구 '병익'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와 같은 학교에 입시원서를 내고 시험을 본 친구다.
그리 성적이 좋지못해 전문대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전기에 합격해
같이 학교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울리고 병익이가 직접 받있다.
-"어 진우구나 , 준비는 다했냐?"
-"그래 넌 어때 합격될것 같아?"
-"언제나 자신감만은 넘치지. 헤헤"
-"그럼 버스정류장앞에서 만나자."
-"알았다,"
대학입학의 합격통지는 전화로도 확인이 가능했으나
TV에서 보는것처럼 직접 학교의 벽보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진우는 자신의 합격과 함께 진심으로 병익이가 합격하길 빌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병익과 만난 진우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지원한 대학을 향했다.
분주히 사람들이 오가고 계시판앞에선 수많은사람들이 자신의 수험번호와 이름을 찾아보았다.
기대에찬 눈으로 계시판을 향하던 두사람의 시선과 표정은 곧 바뀌었다.
-"어... 저기있다. 앗싸... "
합격자중 이름을 먼저확인한건 진우였다.
합격의 환호의 끝에 옆의 병익의 표정을 읽은 진우는 이내 병익이 지원한 학과의 명단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병익의 이름은 없었다.
진우가 말을 잇지 못하자 병익은
'괜찮아. 후기 대학도 있는데 뭐,그건그렇고 이야 장학금 받네! 축하한다!'
약간 씁슬한 기분이었을 테지만 애써 웃으며 축하하는 병익을 보며 진우는 더 미안해졌다.
'후기시험은 꼭 붙을 거야.공부좀 더해야겠다.하하.'
진우는 병익과 같은 학교를 다닐수 없었다. 잘되더라도 후기대학에 지원해 합격해야한다.
둘은 뭔지 모를 거리감이 조금 생긴듯했다.
집으로 돌아온 진우는 한켠에 쌓아놓았던 참고서를 보았다.
박스에 책들을 담고 공터로 나가 책에 불을 붙였다.
십 수년간 한가지 목표를 향해 여기까지 왔다.
목표한 대학이아니라 아주 기분이 좋진 않더라도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안녕….참고서여. 안녕 야간 자습이여, 안녕 수학이여…..'
불길속에서 과거의 힘들었던기억을 떠올리며 하나씩 이별을 고했다.
앞으로 미래가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즐거운 일만 있을거라는 기대로 설레었다.
병익도 집에 돌아왔다.
참고서를 보니 가슴 한켠에서 무거운것이 눌러오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떨어질것을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좋은 기분이 아닌지라. 공부할 상황은 아니었다.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앞날에 대한 걱정에 잠이오질 않았다.
다음 시험에서 걸릴수 있을있을것인가. 재수를 해야 할것인가.
다음해는 마지막 학력고사였다. 경쟁률이 높을것이고 내년에도 떨어진다면 대학은 포기해야할것이다.
이런저런 걱정에 잠이 오질 않았다.
다음날부터 병익은 공부를 시작했고 후기모집 대학에 입시원서를 넣었다.
시험날에 페이스를 맞추기위해 일자별로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시험 이틀전 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준비는 잘되어 가냐 ? '
-'그래 내가 내일모래시험에 맞춰서 컨디션 조절을 해놨잔아. 잘 될거야.'
-'그래 그럼 마무리 잘하고 파이팅이다.'
병익을 응원하는 전화를 끊은후 진우는 TV를 보았다.
그때 뉴스에서는 후기대 입시 시험지가 도난당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후 시험은 한달후 치뤄졌다.
시험을 치르고 나온 병익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진우는 집에서 만화를 그리며 놀고있었다.
그는 어릴때부터 연필과 볼펜으로 이것저것 낙서하는것을 좋아했다.
수업시간 항상 공책의 표지 앞뒷부분을 로봇이나 사람의 얼굴로 가득채우곤 했다.
삐리리리'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에서는 엣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학교의 선배라며 신입생 예비모임이라며 참석하겠냐고 하였다.
진우는 알겠다고하며 날짜,시간,장소를 메모에 적고 수화기를 놓았다.
색다른 기분이었다.
국민학교이후로 여자와 같은 교실에 있었던 적이 없어서 여자란 동경의 대상이었기때문이다.
동급생과 선배들중 여자가 많다는 생각에 웬지모를 설레임이 들었다.
약속한날 학교내의 휴게실에 다과와 음료,맥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선배들이 간간이 한두명씩 자리로 와서 대학생활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선배란 생각에 조금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게 대학생활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진우와 같은 자리에는 조그만 덩치에 안경을 낀 여자아이와 좀 나이가 많아보이는 여자아이,
산적같이 험상�고 덩치큰 남자아이가 있었다.
서로 인사를 하며 고등학교이야기등 이런 저러니 이야기를 하는중에
남자아이와는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되었다.
자~ 우리 앞으로 잘해보자!'
종이컵에 따라진 맥주를 건배하며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불쑥 선배가 나타났다.그리고는 덩치크고 험상�은 아이에게 말을 건냈다.
이야 너 용돈이 아니냐!' '어… 너 길수 구나 .'
그렇다 . 덩치큰 아이 '용돈'은 재수생이었고 선배는 고교동창이었다.
순간 어색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선배는 금방갔지만 말을 놓아야 하는것인가, 높여야 하는 것인가 혼돈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높이면 이상한 분위기가 될듯했다.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용돈'이 한마디 했다.
앞으로 계속 수업듣고 해야되는데 편하게 지내자. 나때문에 부담갖는거 싫다.'
다행히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앞으로 용돈과 수많은 일들이 생길것을 그때 진우는 상상하지 못하였다.
후기대 시험 발표날 진우는 병익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익아 시험은…'
'뭐 나는 원래 전문대가 목표였잖아. 이제 진짜 시험이지!'
후기에 떨어졌다는 걸 알고는 진우도 조심스럽게 말을꺼냈다.
'그래 이번엔 꼭 붙을 꺼야! 잘해라.'
당연하지. 이번에 후기시험은 연기되느라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단 말이야. 전문되는 꼭 될거야'
그러나 진우는 병익과의 거리가 한걸음 더 멀어진것 같은 아쉬움을 느꼈다.
전문대 시험을 친 병익…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았다.
진우는 병익의 집에 전화를 걸어 전문대 합격여부를 물었다.
병익의 목소리는 매우 힘이 없었다.
'잘 안되네… 일단 공군에 들어가서 공부좀 하다가 다시 시험봐야겠다.'
진우는 병익에게 공군시험은 꼭 붙어서 계획한 대로 하라고 하였지만,
한발더 뒤로 물러난 병익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얼마후 진우는 병익에게 공군시험합격여부를 물었다.
병익은 전에보다 더 힘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왜이런지 모르겠다. 난 시험하곤 운이 없는걸까?'
진우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는 시험때문에 힘들어 하는데,
자신은 대학생활에 부풀어 있었다.
병익을 위로하는 전화를 끊은후 자신과 한참의 거리가 생겨버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후 병익은 진우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진우도 병익에게 전화하는것이 미안해 전화하지 않았다.
5.3대 1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자만이 사람대접을 받는 세상이었다.
죽자살자 공부외엔 생각해보지 않은 진우였지만 가슴한켠엔 웬지 모를 이 사회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91년의 겨울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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