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슈퍼스타
재수생 주용돈 ...
그는 대학을 들어오기 위해 참으로 긴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고등학교 3년 공부에 매달렸지만 결국 시험에 떨어졌고
재수라는 길을 들어선후 지방의 스파르타 학원에서 숙식하며 죽자살자 공부해
지방의 스파르타학원에 들어가 죽자살자 공부하여 힘들게 대학에 합격했다.
남들보다 한해 늦게 시작한다고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아있기에 후회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무엇보다 후회없이 놀고싶었다.
술도 마음껏 마시고,여자도 사귀고…
큰 덩치에 약간 검은 피부를 가진탓에 항상
산적,곰 등 별로 좋은 별명을 가져 보지 못했던 그는
20년가까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멋진 세계가 있을것이란 기대에 흥분해 있었다.
92년 2월 11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이었다.
용돈은 이것저것 짐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오리엔 테이션 전 학과 선배들과 동기가 임시소집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본 선배와 동기들을 보며 설레임이 있었다.
선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것이 기분 좋았으며
특히 몇몇 이쁜 여자동기와 선배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찡한 설레임이 들었다.
방에서 여행배낭에 옷가지와 세면도구등을 챙겨넣고는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서는 아버지께서 신문을 보고 계셨다.
'어디가냐?'
'오늘 대학 오리엔테이션이에요.하루밤 자고 올거예요.'
'어. 그래…'
아버지도 일정을 알고 있으셔서 별다른 말씀은 않으셨다.
아버지와는 서먹서먹한 관계라 별다른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한 용돈은 집합장소인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몇 명의 동기와 인솔을 위해 선배들이 와있었다.
용돈을 맞이한건 전에 인사를 나눈 선배 지선과 현도였다.
동기들중에는 전에 눈여겨 봐둔 이쁜 아이도 있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려니 힘들어 죽겠네.'
용돈이 무거운 분위기를 풀기위해 너스레를 떨었고
다른 아이들도 웃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이들이 거의다 모이자 과대표가 나와서 간단한 일정을 안내하였다.
행사중에는 오리엔테이션에서 과 대항 장기자랑이 있었는데
간단한 춤을 같이 연습해서 하기로 하였다.
그중 용돈과 전에 예비소집때 인사한 진우가 포함되어있었다.
선배들은 덩치 큰 용돈이 성격도 좋고 하여
차후 학생회 일을 맡겨볼 생각으로 신경을 썼다.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경주의 행사장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선배 지선과 현도가 분위기를 띄우고
몇몇의 나서기 좋아하는 동기들이 노래를 부르며
남자 여자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용돈은 분위기에 맞춰 노래도 부르고 놀며
이것이 '대학생활의 낭만'이구나 하는것을 느꼈다.
경주에 도착해서 방배정을 받고
강당에 모였다. 강당에서는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영화는 일반적인 영화가 아니라 학생들이 만든 영화같았다.
철거와 관련하여 소외받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는 내용이었으며
엔딩부분의 어딘가 들어본듯한 가요부분이 가슴에 와닿았다.
넌 알고 있었니 세상 그늘진 곳의 아픔을
가슴도 메말라 고독마저 생각지 못하는
밝게만 느껴지던 세상 한 구석에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걸
내일로 가는 길 사랑으로 칠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밤과 낮을 다르게 느끼지 않을텐데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눠줄수 있다면
메마른 눈빛과 마음 대신에 따스한 눈물이 넘쳐 흐를텐데
난 이제 알았지 초라한 곳의 주름진 모습을
바쁘게 살지만 즐거움 생각하지 못하는
밝게만 느껴지던 세상 한 구석에는
웃음마저 잊은 채 사는 사람이 있는 걸
내가 있는 방보다 작은 공간 속에서
좁은 줄도 모른 채 잠든 아이들 모습
나중에 안 거지만 '푸른하늘'의 '내일로 가는길'이란 노래였다.
철거민의 초췌한 모습과 함께 흐르는 음악선율은
가슴 한쪽을 시리게 만들었다.
몇가지 행사가 끝나고 과별 장끼자랑 시간이 돌아왔다.
장끼자랑 1등에겐 뒷풀이를 마음껏 할수 있도록 상금을 걸겠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있은후 객석에서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선배들과 1학년들 몇명이 모여서 동작을 다시한번 점검하였다.
제일먼저 시작한 과는 문과대의 국문학과 장끼자랑은 우리와 같은
음악에 맞춰 간단한 춤을 추는 것이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여자들 몇몇이 춤을 췄고 중간중간 틀린부분도
있었으나 무난히 넘어가고 박수를 받았다.
그후 장끼자랑은 공대에서 차력쑈를 들고 나왔다.
온갖 인상을 쓰며 두부를 격파하는등 어처구기없고 허무한 차력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렸으며, 열렬한 박수소리와 함께 퇴장하였다.
그후 점점 장끼자랑은 열이 올라 연극,패션쇼, 치어리더 등등 준비를 많이한
과가 나왔으며 사람들은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왠만큼 재미가 있지 않으면 먹히지 않을 상황이었다.
용돈과 그의 친구들은 체육복 차림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회자의 안내맨트에 따라 용돈과 친구들은 무대위로 올라갔다.
모두둘 수많은 사람앞에서 장끼자랑하기는 처음인지라 매우 떨렸다.
두려움반 설램반으로 용돈 일행이 무대에 오르자
사람들의 시선은 무대위에 오른 4명에게 집중되었다.
춤과 율동을 같이하기로 한 노래는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이었다.
경쾌한 시작음과 함께 두려움이 있었으나 용기를 내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용돈, 진우, 그리고 여자 동기 은선과 지혜 4명의 율동이 시작되었고
분위기는 조금씩 달아올랐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했던지라 율동은 엇박자가 나기 시작하였다.
서로의 박자가 엉키기 시작하니 맞는것이 없었고 모두들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동기 은선이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서서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는 최악의 상황이 될수밖엔 없었다.
용돈은 이 사태를 빨리 수숩하고 시선을 돌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용돈은 본능적으로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언젠가TV에서 본적이 있는 섹시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큰 덩치에 출렁이는 살이 각자 움직이는 모습은 사람들의
웃음보를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진우도 여기에 거들어 용돈의 옆에서
춤울추었고 사람들은 이들의 춤에 자지러 지기시작했다.
열광적인 무대를 뒤로하고 내려와서 모두들 눈물이 글썽이는 은선을 달래주었다.
선배 현도가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지선이 은선을 안아주며 위로하였다.
모두들 용돈의 멋진 춤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끼자랑 1등은 아쉽게 다른 과에 넘어갔지만 용돈은 이날의 재치로 인기상을 얻었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모임에서 용돈은 그날밤의 스타가 되었다.
그날밤 술자리가 질펀하게 벌어졌다.
바닥이 펄펄 끓는 방에서 과일그림이 그려져있는 팻트 소주병의 술을 종이컵에 따라마시며
처음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돌아가며 한마디를 하는 시간에 대학에 들어오게되어 앞으로 잘하자는 이야기가 대다수였으나
치열한 경쟁을 뒤로 우리말고 떨어진 친구들을 생각해 더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자는 아이도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는 팻트 소주병이 몇개 사라지고난뒤 춤판으로 바뀌었다.
몇몇은 골아떨어져서 다른방으로실려갔고 살아남은 이들은 좀비처럼 술을 마셔댔다.
용돈은 술이 취해 기억이 몽롱하였으나 화장실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가는 길은 험난했다. 땅이 솟구쳐올라 자신의 길을 가로막았다.
힘들게 엉금엉금 네발로 볼일을 보고난후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아 일어나보니 화장실에서 쪼그려 자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모두 흡사 좀비와 같은 초췌한얼굴이었다.
지나가던 중년의 관리인 아저씨가 쯧쯧쯧 혀를차며 지나갔다.
빈자리를 찾아 누웠으나 갑자기 옆에 있던 아이들이 일어났다.
'우왁 이게 무슨 냄새냐...'
용돈이 화장실에서 잠을 자는동안 옷에 화장실 냄새가 베어 있었던 것이다.
용돈은 부끄러워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가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냄새를 중화시키기위해...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다음날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3월 입학후 선배들은 용돈을 좀더 친근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학생회의 일을 맏기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시키며 저녁은 술자리를 같이 하였다.
당시는 노태우 정권의 말기인지라 이런저런 노태우의 비리를 성토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만들었으며
주로 통일과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용돈은 그림솜씨가 있었던지라 신문의 만평을 현수막으로 옮기는 일을 하였다.
선배들은 흐뭇한 모습으로 용돈을 쳐다보았다.
3월 11일 그날은 단과대학 학생회 출범식이 있는 날이었다.
용돈이 다니는 회계학과는 상경대학이므로 상대앞에 조그만 무대가 설치되었다.
이날도 어김없이 장끼자랑이 준비되어있었고 선배들은 용돈을 주축으로
색시댄스를 준비하였다. 전처럼 4명이하되 전의 여자동기들은 빼고 4명의 남자들만
무대를 향했다. 대신 음악과 복장을 좀더 잘 준비하기로 하였다.
저녁이 되자 무대가 막이 오르고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행사가 진행되었다.
과별로 소개하는 자리가 끝나고 난뒤 장끼자랑이 시작되었다.
몇몇 과의 장끼자랑으로 분위기가 무르익고 회걔과의 순서가 되자
사회자도 용돈을 알고 있는듯 청중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기대가 되죠? 자~ 회계학과의 장끼자랑입니다.'
안내와 함께 요상한 음악이 흐르고 용돈이 아라비아 공주와 같은 몸빼바지에
차도르를 쓰고 등장했다.
사람들의 폭소가 이어지고, 아라비아 풍의 음악이흐르며 용돈의 막춤이 시작되었다.
출렁이는 뱃살과 함께 관객들은 자지러 지기 시작하였고 분위기는 무르익기 시작했다.
옆에서 같이 춤을 추던 동기들도 용돈을 중심으로 춤을 추었다.
춤이 끝나갈 쯤 그때 사건이 터졌다.
진우가 그만 마이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넘어지며 용돈의 몸빼 바지를 붙잡고 넘어진것이다.
훌러덩~
용돈은 공연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못볼것을 보이고 말았다.
여자들은 비명을 질렀고 남자들은 웃음을 그칠줄 몰랐다.
용돈은 재빨리 수습을 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사회자는 웃음과 함께 무대를 마무리하였고...
장끼자랑 대상은 당연히 회계과로 넘어갔다.
영광은 돌아왔으나 용돈은 모든이에게 얼굴을 알리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후 용돈은 학생회를 떠나 은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소설작품 > [소설]X세대비망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X세대비망록]썰렁캠퍼스-02.무서운 여자선배 (0) | 2008.05.13 |
---|---|
[X세대 비망록]썰렁캠퍼스-01.멀어져 간다. (0) | 2008.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