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국’ 용어 폐지론 재부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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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7-02-08 21:57]
국립용산박물관이 개관했던 2005년. 몇가지 소동이 일어났다.
하나는 1층 고고관 입구에 걸린 고고학 편년표에 고조선이 빠졌다는 것. 또 하나는 ‘원삼국실’이라는 전시실 명칭이었다.
박물관은 이후 비난의 화살이 집중된 편년표 대신 ‘두루뭉수리한’ 편년표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원삼국실’이라는 세부전시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원삼국’이란 용어는 한마디로 ‘한국 고대사의 기구한 팔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1972년 고고학자 삼불 김원룡이 처음 창안했을 때는 마침내 식민사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어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35년이 지난 지금에는 도리어 식민사관과 분단사관의 찌꺼기를 담고 있으며, 이젠 폐기되어야 하는 말로 운위되고 있다.
이청규 영남대 교수(문화인류학)는 8일 ‘한국 고대사의 시기구분’을 주제로 열린 한국 고대사학회 토론회에서 “이젠 원삼국 시대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삼국시대 전기’라는 용어를 수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불이 만든 ‘원삼국시대’란 한마디로 삼국이 성립되었지만 아직 실질적인 왕국으로 발돋움하지 못한 기원전후에서 기원후 300년 무렵까지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원삼국이란 용어의 창안은 그때까지 완전히 부정되었던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일부 인정한, 당시로서는 주목할 만한 성과로 볼 수 있다. 원래 일제가 구축한 식민사학은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부정해왔다.
일본학자의 주장대로라면 서기전 108년~서기 313년은 한반도 북부에는 한사군이 지배했고, 서기 4세기부터는 한반도 남부에 이른바 임나일본부가 설치되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깡그리 무시했으며, 이 주장대로라면 도무지 우리 고대사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삼불이 풍납토성 시굴조사 등 일련의 고고학 자료를 토대로 1967년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삼국시대 초기론’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삼불이 비록 1972년 한발짝 후퇴하여 ‘삼국시대 초기’를 다소 애매한 ‘원삼국’으로 고쳤지만, 식민사학의 그림자가 워낙 엄청났던 때 ‘원초적인 삼국시대’의 개념으로 ‘원삼국’ 용어를 썼다는 그 자체가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원삼국이라는 용어를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원삼국’이란 용어가 여전히 식민사학의 그늘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삼불 이후 기원전후부터 300년 동안의 모든 발굴성과는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시대’가 아니라 단지 ‘원삼국 시대’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통용되었다. 기원전 1세기에 이미 삼국을 건설했다는 기록(삼국사기)을 여전히 미흡한 수준으로 믿고 있다는 뜻이다.
이청규 교수는 “애초부터 원삼국시대는 한반도 남부에 중심을 둔 삼한시대를 대신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민족사의 시대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원삼국시대를 대표한다는 와질토기는 실상 영남지역 외에는 거의 분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반도 전역은 물론 남한지역마저 대표하지 못하는 지역의 시기개념이라는 것이다.
이교수는 “삼불의 주장 이후 35년이 지나면서 경주 조양동 유적을 비롯, 전국적으로 기원후 1~3세기에 해당되는 무덤과 생활유적 수백곳이 발굴됐다”면서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풍부한 자료가 축적되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시대구분에 대한 논의 또한 활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조선(중국측 사료에 따르면 기원전 7세기~기원전 4세기가 그 상한) 후기부터 역사시대라 한다면 구석기-신석기-고조선 다음에는 삼국시대(초기 혹은 전기)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오영찬 중앙박물관 학예관은 “남한 중심의 원삼국론 개념 저변에는 분단사학의 그림자도 깔려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젠 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지는 시대개념을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중국의 동북공정 같은 외부의 도전을 막으려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등 ‘내공’부터 쌓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풍납토성 발굴현장. 이곳에서 한성백제의 왕성임을 뒷받침하는 유물·유구들이 발굴되면서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더욱 신빙성을 얻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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