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글/[추억]나와 사람들

학력고사의 단상

goodcomic 2022. 5. 30. 15:35


야간자율학습까지 학력고사란 한번의 시험에 12년간 매달린 100만 수험생들의 모습

10시 도서관의 가로등불을 보며 집으로 가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공부는 왜 하는 것일까?  대학을 가기위해?
목적을 명확하게 잡지 못하니 공부라는 수단에 매몰되기 시작하고, 
결국 공부한게 아까워서 대학에 가게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뛰어들어 돈을 벌며, 하나의 주체가
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다.

수학을 못했다. 원래 머리가 좋지도 못했지만 놀다가 늦게 공부하다보니
국어와 암기과목은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가도 기초가 부족한만큼 수학은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성적도 못한다고 하기도, 그렇다고 잘한다고 하기도 애매한 
어중간한 성적이었다.

시험때의 수학난이도가 사실상 성적을 갈랐다.

고3후반기 한동안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유는 모른다. 공부를 해도 성적이 안오르고 그만큼 우울해진다.
마지막 모의고사인 배치고사마저 슬럼프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원할 학교를 정하는 시기가 왔다.

선생은 입시학원의 배치기준표를 가지고 모의고사 점수에 따라가며 최초지원학교에서
주욱 내려가기 시작했다. 너무 기계적이란 생각을 했다.
1점의 에누리도 없었다. 해당 점수를 만족하는 학교만 써주겠다고 했다.
뭔가 야박했다. 싸우고 싶지 않았다기보다 싸울 엄두를 못냈다.
어머니의 초라한 손이 건네는 얼마안되는 돈봉투가 넘어가며
한숨쉬는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왔다. 
자책하는 마음 한켠에는 선생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명이라도 더 대학에 보내야한다는것과 의례히 생기는 의견차이에 의해
감정을 낭비하기 싫다는 이유일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보와 권위의 비대칭은 무시할수가 없다.

인생이 바뀌는 순간의 결정에서 점수 1점의 여유도 허용못하는 그 야박함때문이었을까
어머니의 작은 정성이 자연스럽게 서랍으로 들어가는 그 부조리 때문이었을까

교권에 대한 실망감은 같은 입장의 학생들 모두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오히려 다른반 선생님한분이 촌지를 모두 거절하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선생님은 평소 학생들사이 에서는 그다지 좋은 평을 가지진 못하는 선생님이었다.
요즘에는 법이 강화되어 당연한 이야기 겠지만
만연한 촌지문화에서 그런제도를 거부하는 선생님은 우리에겐 투사처럼 받아들여졌다.

가장 극적으로 평판이 변화하는 순간이다. 어린마음에도 정의란건 마음속에 자리잡고있었다.

어쨌든 슬럼프 시기의 모의고사 점수에따라 선생이 지목해준 학교, 학과에 지원했다.

기존에 예상했던 학교에 비해 너무 하향지원이란 생각에 설마 떨어지겠냐는 자만심 같은것도있었다.

TV에서 경쟁율이 나왔다. 5.3대 1이었다. 역대 최고 경쟁률, 하향지원...

지원하는 대학에 가서 학력고사를 쳤다. 생각보다 그해의 수학이 쉬웠다.

집에서 방송을 보며 혼자 채점을 해보니 지금까지 쳤던 모든 모의고사보다 점수가 높았다.

결국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원하는 대학도아닌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머니는 등록금 안든다고 좋아하셨다.


대학에 들어간후 동기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다 현실은 불만족스럽다.

원하는 학교못들어간게 아쉽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재수해서 다시 시험친다고 했을때 

만족할만한 좋은대학에 들어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실제 재수해서 한단계 상위학교로 바꿔서 가는 동창을 보기는 했는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울 명문대 들어갈것 아니면 재수해봐야 시간낭비다. 
그시간에 기술이나 배우라고 누군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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