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마르크스를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이데올로기적 사상가로 만든 저서.
1847년 '공산주의자 동맹'의 강령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이 책은
사회 발전의 다양한 단계에서 계속되어온 계급 투쟁의 역사는
이제 전체 사회를 착취, 억압과 계급 투쟁에서 영구히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피착취, 피억압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착취, 억압계급인 부르주아지에게서
해방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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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칼 마르크스(1818-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는 공산당의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그것은 이 보다 더 적절한 시기에 나타날 수 없었다. 초고는 런던에 있는 인쇄업자에게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의 불과 몇 주전에 배달되었다. 프랑스어 번역본은 1848년 6월 파리에서 노동자들의
봉기가 있기 조금 전에 발표되었다. 사고와 행위는 그래서 함께 가는 것 같이 보였고 공산주의 선언서는
혁명에서 세계의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유일한 행로를 본 이들에게 재집결점이 되었다.
하나의 유령 즉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첩보경찰 등 구유럽의 모든 열강들은 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하여 신성동맹을 맺었다.
집권당으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난을 받아보지 않은 반대당이 있는가?
또한 그 공산주의라는 비난의 낙인을 오히려 자기의 반동적 적들에게,
뿐만 아니라 보다 진보적인 다른 반대당에게 되돌려 보내지 않은 반대당이 있는가?
이 사실로부터 두 가지 점이 도출된다.
1. 모든 유럽 열강은 이미 공산주의를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했다.
2. 지금은 공산주의자들이 당 자체의 선언을 통하여 전세계에 대해
공개적으 로 자신의 견해, 목적, 경향성을 발표하고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그 옛날 이야기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시기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여러 국적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은
런던에 모여 다음과 같은 선언을 초안하고 이를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 덴마크어로 출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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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장인과 직인,
한 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숨겨진,
때로는 공공연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각각의 싸움은 그때마다 대대적인 사회의
혁명적 재편 또는 경쟁하는 계급들의 공동파멸로 끝이 났다.
이전의 역사적 시대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사회가 다양한 질서,
잡다한 사회적 서열의 등급으로 복잡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에는 귀족, 기사, 평민, 노예가 있었고 중세에는 봉건영주, 가신,
길드장인, 직인, 도제, 농노가 있었다. 이들 계급의 거의 대부분은 또한 부수적인 등급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봉건사회의 폐허로부터 싹튼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적대를 없애지 못하였다.
단지 낡은 것들 대신 새로운 계급, 새로운 억압의 조건, 새로운 투쟁형태들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명확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계급적대를 단순화시킨 것이다. 전체 사회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양대 적대 진영으로,
서로 직면하고 있는 양대 계급으로 점점 더 분열되어 가고 있다.
중세 농노로부터 초기 도시의 시민이 생겨났으며 이 시민으로부터 부르주아지의 최초 분자들이 발전해 나왔다.
아메리카의 발견, 케이프 항로의 발견은 떠오르는 부르주아지를 위한 신선한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동인도와 중국의 시장, 아메리카의 식민지화, 식민지와의 무역, 교환수단과 상품의 일반적인 증가는
상업과 해운업 및 공업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충격을 가하였으며, 또 그럼으로써 비틀거리는
봉건 사회내의 혁명적 요소에게는 급속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폐쇄적 길드가 산업생산을 독점하고 있던 봉건적 산업체계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시장의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를 대신한 것이 곧 매뉴팩처 체계였다.
길드 장인은 매뉴팩처 중간계급에 의해 밀려났으며 서로 다른 자치적 길드간의 분업을 사라지고 각 공장 내에서 분업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시장은 꾸준히 성장했으며 수요 또한 계속 상승하고 있다.
그래서 매뉴팩처 체제조차도 이제 불충분한 것이 되었다. 또한 증기와 기계가 산업생산을 혁명적으로 발전시켰다.
매뉴팩처의 위치는 거대한 현대 산업으로 대체되고 산업 중간 계급의 위치는 산업 백만장자,
전체 산업부대의 지휘관, 현대 부르주아지가 차지하게 되었다.
현대산업은 아메리카의 발견으로 길이 트인 세계시장을 확립했다.
세계시장은 상업, 해운업, 육상교통의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발전은 거꾸로 산업의 확장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즉 공업, 상업, 해운업, 철도가 확장되는 것과 똑같은 비율로 부르주아지는 발전했으며
자신의 자본을 증가시켰고 중세시대로부터 이어 내려온 모든 계급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현대 부르주아지 자체가 긴 발전과정의 산물이며
생산양식과 교환양식에서 나타난 일련의 혁명이 낳은 산물임을 알 수 있다.
부르주아지의 각 발전단계에는 그에 상응하는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진보가 뒤따랐다.
봉건귀족의 지배하에서는 피억압 계급으로, 중세 코뮨에서는 무장자치단체 - 어느 곳에서는
자립적 도시 공화국(이탈리아와 독일), 또 어느 곳에서는 군주의 과세대상인 '제 3신분'(프랑스) - 로 있던
부르주아지는 이후 매뉴팩처 시기에는 귀족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 사실상 일반적으로는
대군주들의 초석으로서 반(半)봉건군주 또는 절대군주에 봉사했으며 현대 산업과 세계시장이
확립되면서부터는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현대의 대의제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현대국가의 집행기구는 단지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동사를 관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부르주아지는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이 지배를 확립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봉건적·가부장적·
전원적 관계를 종식시켜왔다. 부르주아지는 인간을 '타고난 상하관계'에 묶어 놓는
잡다한 봉건적 끈을 가차없이 끊어버렸으며 그 외의 모든 인간의 관계를 적나라한
이기심, 냉혹한 '현금지불관계'로만 만들어 놓았다. 또한 가장 신성한 종교적
정열의 환희, 기사도적 열정의 환희, 세속적 감상주의의 환희를 자기중심적 타산이라는
얼음같이 차디찬 물 속에 빠트려버렸다. 또 개인의 존엄성을 교환가치로 용해시켜버렸으며
결코 무효화될 수 없이 공인된 무수한 자유대신에 자유무역이라는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를 세워 놓았다.
한 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정치적 환상으로 가려진 착취를 적나라하고 후안무치하고 노골적이고 야수 같은 착취로 대체한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존경과 경건한 경외심으로 받아들여졌던 모든 직업으로부터
그 후광을 걷어냈다.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과학자를 자신이 보수를 주는 임금노동자로 전화시켜 버린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가족으로부터 그 감정의 장막을 찢어내고 가족관계를 단순한 돈의 관계로 만들었다.
부르주아지는 복고주의자들이 그토록 경애해 마지않는 중세시대의 야수와 같은 힘의
과시가 어떻게 하여 가장 게으른 나태로서 훌륭히 보완되는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가 과연 무엇을 낳을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보여준 예였다.
부르주아지는 이집트 피라미드나 로마의 수도(水道), 고딕 성당을 훨씬 능가하는 기적을 이룩했다.
이전의 모든 민족대이동이나 십자군 따위는 견주지도 못 할 원정들을 감행한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끊임없이 생산도구를 혁명적으로 개조하고 그럼으로써
생산관계를 개조하며 또 그와 더불어 사회 관계 전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 반면 이전의 모든 산업 계급들에게는 낡은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자신의 1차 존재조건이었다.
끊임없는 생산의 혁명적 발전, 모든 사회적 조건들의 부단한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는 부르주아 시대와
이전의 모든 시대를 구분 짓는 특징이다. 모든 고정되고 꽁꽁 얼어붙은 관계들,
이와 더불어 고색창연한 편견과 견해들은 사라지고 새로이 형성된 모든 것들은 골격을 갖추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딱딱한 것은 모두 녹아 사라지고 거룩한 것은 모두 더럽혀지며,
마침내 인간은 냉정을 되찾고 자신의 실제 생활조건, 자신과 인류의 관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생산물을 팔 수 있는 시장을 끊임없이 확장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으로
인해 지구상의 모든 구석구석을 누벼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가는 곳마다 둥지를 틀고 자리잡고 연고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세계시장의 착취를 통하여 각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범세계적인 성격을 부여해 왔다.
복고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유감이겠으나 부르주아지는 산업의 발 밑으로부터 산업이 딛고 서 있는 일국적 기반을 빼앗아내었다.
기존에 확립된 모든 일국적 산업들은 모두 파괴되었거나 나날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모든 문명 민족들이 생사를 걸고 도입하려 하는 새로운 산업, 이제 더 이상 토착 원료 자원을 가공하지 않고
가장 먼데서 온 원료자원을 가공하면서도 그 생산물은 국내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구석에서 소비되는
새로운 산업이 그 낡은 산업들을 몰아내고 있다. 그 나라의 생산물로 충족되던 낡은 욕구
대신에 먼 나라 먼 토양의 생산물로 충족될 수 있는 새로운 욕구가 생겨난다. 낡은 지역적·
민족적 단절과 자급자족 대신에 모든 방면에서의 상호교류, 민족들 간의 보편적 상호의존이 나타난다.
이는 물질적 생산뿐 아니라 정신적 생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별 민족의 지적 창조물은 공동의 재산이 된다.
민족적 편향성과 편협성은 점차 불가능해지며 수많은 민족적·지역적 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문학이 생겨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도구가 급속히 향상되고 교통수단이 엄청나게 개선됨으로써
가장 미개한 민족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을 문명화시킨다. 상품의 저렴한 가격은 모든 만리장성을
무너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미개인의 매우 고집스러운 증오를 굴복시키는 대포이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민족에게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채택할 것이냐
죽을 것이냐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여 자기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도입할 것 즉, 부르주아 자체가 될 것을 강요한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시골을 도시의 지배에 복속 시켰다. 부르주아지들은 거대도시를 만들었고
농촌에 비해 도시인구를 엄청나게 증가시켰으며 이를 통해 상당부분의 인구를 농촌생활의 백치상태로부터 구출해 냈다.
또한 시골이 도시에 종속되도록 만든 것과 똑같이 미개국과 반미개국들이 문명국들에게,
농민의 나라가 부르주아의 나라에게, 동양이 서양에 종속되도록 만들었다.
부르주아지는 인구, 생산수단, 재산의 분산된 상태를 점차 제거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인구를 한데 뭉치고 생산수단을 집중시켰으며 재산을 소수의
손에 집적시켰다. 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정치적 집중이 이루어졌다.
개별적 이해관계와 법률, 정부, 조세제도를 갖고 있던 독립적 지역 또는
그것들과 대충 관련된 지역들은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조문, 하나의
일국적 계급이해, 하나의 국경, 하나의 관세를 지닌 하나의 나라로 뭉치게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백년 남짓한 자신의 지배기간 동안 이전의 모든 세대들이 이루어낸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하고 엄청난 생산력을 창출했다.
인간에 대한 자연력의 복속, 기계, 공업과 농업에서의 화학의 응용, 기선, 철도,
전기통신, 경작을 위한 전 토지의 개간, 운하 건설, 땅에서 솟아난 듯한 거대한 인구
- 이전 세기에 그러한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의 품속에 잠자고 있으리라고 예감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부르주아지가 딛고 서 있는 토대인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은 봉건사회 속에서 생성된 것이다. 이들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이 특정한
발전단계에 이르자 봉건사회가 생산하고 교환하는 조건, 농업과 제조업의 봉건적
조직, 한 마디로 말해 봉건적 소유관계는 이미 발전되어 있는 생산력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그 만큼의 질곡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들은
산산이 부서져야 했으며 실제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 자리에는 자유경쟁이 대신 들어섰으며 또 자유 경쟁에 맞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가
뒤따랐고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가 뒤따랐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생산관계, 교환관계,
소유관계를 가지고 있는 현대 부르주아 사회, 엄청난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을 출현시킨
이 사회는 자기가 주술로 불러낸 명부(冥府)세계의 힘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게
된 마법사와도 같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산업과 상업의 역사는 오직 현대적
생산조건에 대한 또 부르주아지와 그 지배의 존재조건인 소유관계에 대한 현대적
생산력의 반란의 역사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면서 갈수록
더 한층 위협적으로 전체 부르주아 사회의 존망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상업공황만을
언급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공황에서는 기존 생산물뿐 아니라 이전에 창조된
생산력의 거의 대부분이 주기적으로 파괴된다. 또한 이전의 모든 시대에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을 전염병 즉, 과잉생산의 전염병이 번지게 된다. 사회는 갑자기 순간적인 야만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마치 기근이나 전면전의 황폐로 인해 모든 생산수단의 공급이 차단된 것처럼 된다.
산업과 상업은 파괴된 듯이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과도한 문명화, 과도한 생산수단, 과도한 산업,
과도한 상업 때문이다. 사회의 수중에 있는 생산력은 더 이상 부르주아적 소유조건을 더 한층
발전시키는 데로 향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생산력은 소유조건에 비해 너무 강력해져서 오히려
그것에 의해 질곡 당하며 질곡을 극복하자마자 생산력은 부르주아사회 전체를 무질서하게
만들고 부르주아사회의 여러 조건은 생산력이 만들어 낸 부를 포괄하기에는 너무 협소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부르주아지는 어떻게 이러한 공황을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생산력의 대량 파괴를
강화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정복하고 기존의 시장을 더욱 철저하게 착취함으로써
극복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보다 범위가 넓고 보다 파괴적인 공황의 길을 닦으며 공황을 예방하는 수단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부르주아지가 봉건제를 무너뜨렸던 무기가 이제 부르주아지 자신을 겨냥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자신을 죽이는 무기를 주조했을 뿐만 아니라 이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인 현대 노동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들도 탄생시켰다.
부르주아지 즉, 자본이 발전하는 것과 똑 같은 정도로 프롤레타리아 즉, 현대 노동계급도 발전한다.
이들은 일거리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으며 그들의 노동이 자본을 증대시키는
한에서만 일거리를 찾을 수 있다. 이들 노동자는 다른 보통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자신을 조금씩 팔아야 하는 하나의 상품이며 따라서 경쟁의 성패의 여하에, 시장의 동요 여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기계의 광범위한 활용과 분업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모든 개인적
성격을 잃었으며 그 결과 노동자에 대한 매력도 사라졌다. 노동자는 이제
기계의 부속물이며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단조로우며 가장 쉽게 획득한 기술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생산비용은 거의 전적으로 그가 자신을 유지시키고 종족을 번식시키는데
필요한 생존수단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상품의 가격 곧 노동의 가격은 그 생산비용과 같다.
그러므로 노동에 대해 느끼는 반발심이 강할수록 임금은 감소한다. 그뿐 아니라 기계의 사용과
분업이 증가할수록 노동 시간이 연장되거나 주어진 시간 내에 강제된 노동량이 증대하거나
기계속도가 빨라지거나 하는 등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짐 또한 증가한다.
현대산업은 가부장적 장인의 작은 작업장을 산업 자본가의 거대한 공장으로
바꾸어놓았다. 공장으로 결집된 노동자 대중은 군대식으로 편성된다.
그들은 산업군대의 사병(私兵)으로서 장교, 하사관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위계의 지휘하에 있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 부르주아 국가의 노예일 뿐
아니라 날이 갈수록 시간이 갈수록 기계에 의해, 관리자에 의해 무엇보다도
개별 부르주아 공장주 자신에 의해 노예화되고 있다. 이러한 전횡은 영리가
그 목표이자 목적임을 노골적으로 선언하면 할수록 더 한층 인색해지고 증오스러워지고 쓰라린 것이 된다
육체노동에 필요한 기술과 발휘되는 힘이 줄어들수록, 바꿔 말해서
현대산업이 발전할수록 더 한층 남성의 노동은 여성의 노동으로
대치된다. 연령과 성별의 차이는 더 이상 노동계급에게 사회적 타당성을
갖지 못 한다. 연령과 성별에 따라 사용하는 값이 다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노동의 도구인 것이다.
지금까지 노동자에 대한 공장주의 착취가 끝나고 노동자가 임금을 현금으로 받게
되자마자 부르주아지의 기타 부분 즉 집주인, 상점주인, 전당포 주인 등이 노동자에게 달려든다.
소매상, 상점주, 일반적으로는 은퇴한 상인들, 수공업자와 농민 등 중간계급의
하층은 점차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한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그들의 영세자본으로는 현대산업이
움직이는 규모를 감당할 수 없고 대자본가와의 경쟁에서 뒤쳐지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산방식으로 인해 그들의 전문화된 기술이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계급의 인구로부터 충원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다양한 발전단계를 거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생겨나자마자
부르주아지와의
투쟁도 시작된다. 처음에는 개별 노동자들이 싸움을 시작했으나 다음에는
한 공장의 근로자들이, 그 다음에는 한 직종이, 한 지역의 직공이 자신들을
직접 착취하는 개별 부르주아를 상대로 싸우게 된다. 그들은 부르주아적 생산조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생산도구 자체에 대해서 공격을 가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과 경쟁하는 수입품을 쳐부수며, 기계를 산산조각 내고, 공장을 불지르며 사라져버린
중세시대 근로자의 지위를 무력으로 회복하고자 한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는 아직 전국에 흩어져 있고 자기들 간의 상호경쟁으로 분열되어 있는
지리멸렬한 대중에 머물러 있다. 설사 그들이 모여 보다 긴밀한 결합체를 이룬다 해도
그것은 아직 그들 자신이 연합한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연합한 결과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프롤레타리아트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게다가 당분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의 적 즉,
절대군주제의 잔재인 지주, 비산업부르주아, 쁘띠부르주아지와 싸우는 것이다.
이리하여 전체 역사적 운동은 부르주아지의 수중에 집중된다. 그렇게 얻어진 승리는 모두 부르주아지를 위한 승리인 것이다.
그러나 산업이 발전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숫자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보다 큰 무리로
집중되어 힘이 더욱 성장하며 그 힘을 더욱 자각하게 된다. 기계가 노동의 모든 차이들을
소멸시키고 거의 모든 곳에서 임금을 동일하게 낮은 수준으로 감축시키는 것과 비례하여
프롤레타리아트 대열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생활조건은 더욱 더 평준화된다.
부르주아들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그 결과 상업공황이 일어나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갈수록 동요하게 된다.
기계가 급속히 발전하고 끊임없이 개선되면서 노동자의 생활은 갈수록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개별 근로자와 개별 부르주아간의 충돌은 갈수록 두 계급간의 충돌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에 반대하는 결사체(노동조합)를 결성하기 시작하며 임금율을
높이기 위해 한데 뭉치고 때때로 일어날 충돌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단체를 창건한다. 여기저기에서 싸움은 폭동으로 터지게 된다.
때때로 노동자는 승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이다. 싸움의 실제적 결실은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팽창하는 노동자들의 단결에 있다. 현대 산업이
만들어낸 전달수단으로 인해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이 서로 접촉할 수 있게됨으로써
단결은 한층 확대된다. 바로 이 접촉이야말로 같은 성격을 지니는 수많은 지역적
투쟁을 계급들 간의 하나의 전국적 투쟁으로 집중시키는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계급투쟁이 정치투쟁이다.
중세시대의 시민이 옹색한 도로를 가지고 수백 년의 기간에 걸쳐 달성한
그 결과를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철도에 힘입어 수년간에 이룩한다.
이렇게 프롤레타리아를 하나의 계급으로, 나아가 하나의 정당으로 조직하는 일은 노동자
자신들간의 경쟁으로 인해 계속 저해 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수록 항상 다시
솟아오르며 강해지고 굳건해지며 거세지고 있다. 그 조직은 부르주아지 자체의 분열을
이용하여 노동자의 특정한 이해에 대한 입법적 승인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10시간 노동법안이 통과되었다.
기존 사회의 계급들 간에 일어나는 모든 충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과정을 촉진시킨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이 항상적인 싸움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부르주아지는 처음에는 귀족과, 이후에는 부르주아지 가운데 산업의 진보에 대해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 일부분과, 그리고 외국의 부르주아지와는 항상 싸움을 벌여왔다.
이 모든 싸움에서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호소하고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그들을 정치무대로 끌어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부르주아지는 스스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기자신의 정치교육과 일반교육의
요소들을 공급하게 된다. 달리 말해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신과 맞서 싸울 무기를 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본 대로 지배계급의 모든 분파들은 산업적 진보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거나 적어도 자신의 존재조건을 위협 당하게 된다.
이들 역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계몽과 진보의 새로운 요소를 공급한다.
마지막으로 계급투쟁이 결정적인 순간에 다다르게 될 때 지배계급 내부에서
아니 사실상 기존사회 전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붕괴과정은 매우 격렬하고
강렬한 성격을 띠게 되므로 지배계급 일부가 떨어져 나와 미래를 자기 수중에
장악하고 있는 혁명적 계급의 편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찍이 귀족의
일부가 부르주아 편으로 넘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부르주아의 한 부분
특히 역사적 운동 전반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으로 스스로를 끌어올린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부분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으로 넘어온다. 오늘날 부르주아와
대립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가운데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계급들은 현대산업이 전진함에 따라 몰락하여 결국 사라져가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현대산업의 특수하고도 본질적인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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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투쟁은 처음에 내용에서는 아니더라도 형식에서는 일국적인 투쟁이다.
따라서 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당연히 무엇보다 먼저 자국 부르주아지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일반적인 발전국면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어느 정도 은폐된 내전을 추적하여 그 내전이 공개적인 혁명으로 터져 나오고 부르주아지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를 위한 토대를 놓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이미 보았듯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형태는 억압 계급과 피억압 계급간의 적대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한 계급을 억압하려면 그 계급이 적어도 자신의 노예적 존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일정한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농노제 시대의 농노가 꼬뮨의 구성원으로 발전해 나갔듯이
봉건적 절대주의의 멍에 속에 있던 쁘띠부르주아는 부르주아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노동자는 산업의 진보에 따라 떠오르기는커녕 자기 계급의 존재 조건 아래로 더욱 가라앉는다.
노동자는 빈민이 되며 빈곤은 인구나 부의 증가보다 더 빨리 발전한다. 여기서 부르주아지가
사회의 지배계급이 되거나 자신의 존재 조건을 고압적인 법률로 사회에 강제하는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즉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노예제 내에서
노예의 생존을 보장해 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즉 노예가 자기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노예를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으로 노예를 빠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지배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회는 이제 이 부르주아지 아래에서 살 수 없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의 존재는 더 이상 사회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의 존재와 지배를 위한 본질적 조건은 자본의 형성과 증대이며 자본의 조건은 임금노동이다.
임금노동은 오직 노동자들 간의 경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타의적이기는 하지만 부르주아지가
촉진시키는 산업의 진보는 경쟁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립 대신 결사로 인한 혁명적 결합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현대 산업의 발전은 부르주아지가 생산물을 생산하고 전유하는 바로 그 토대를 발 밑에서 무너뜨리는 셈이다.
결국 부르주아지가 생산하는 것은 자기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일뿐이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양자 모두 불가피한 것이다.
2.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공산주의자는 전체 프롤레타리아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공산주의자는 노동계급의 l당들과 대립하는 별도의 당을 결성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지는 이해와 별도로 분리된 이해를 가지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자신만의 분파적 원칙을 세워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이 원칙에 뜯어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오직 다음의 점에서만 다른 노동계급의 당들과 구분된다.
(1) 각국 프롤레타리아의 일국적 투쟁에서 일체의 국적으로부터 독립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이해를 제기하고 전면에 내세운다. (2)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거치는 다양한 발전단계에서 언제 어디서나 그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는 한편으로 실천적인 면에서는 모든 나라 노동 계급
당들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고 결의에 찬 부분으로서 다른 모든 당들을 밀고 나가며
다른 한편으로 이론적인 면에서는 거대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진행노선, 조건, 궁극적인 전반적 결과들을 명확히 알고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공산주의자의 당면 목적은 다른 모든 프롤레타리아 당들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시키고 부르주아 지배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도록 하는 데 있다.
공산주의자의 이론적 명제들은 결코 이러저러한 자칭 보편적 개혁가가 발명 또는 발견한 사상이나 원칙들에 기초하지 않는다.
그 명제들은 단지 일반적인 견지에서 현존하는 계급투쟁으로부터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운동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실제적 관계들을 표현할 뿐이다. 현존하는 소유관계의 폐지는 결코 공산주의의 명백한 특질이 아니다.
과거의 모든 소유관계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에 따른 역사적 변화에 항상 종속되어 왔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적 소유의 편에서 봉건적 소유를 폐지했다. 공산주의의 명백한 특질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이다. 그런데 현대 부르주아적 사유재산은 계급적대에 기초한,
소수에 의한 다수의 착취에 기초한 생산물 생산·전유 체계의 최종적이고도 가장 완벽한 표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의 이론은 사유재산의 폐지라는 단 하나의 문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노동자는 한 사람이 자기 노동의 결실로서 사적으로 얻은 재산, 이른바 모든 사적 자유, 행동, 자주성의
기반이라고 일컬어지는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폐지하려 한다고 비난받아 왔다.
자기가, 자신의 힘으로 애써 벌어들인 재산이라니! 그것은 부르주아 재산형태에 선행하는 소기능공이나
소농민의 재산을 뜻하는가? 그것이라면 폐지할 필요도 없다. 산업의 발전이 이미 상당히 파괴해 왔고 지금도 나날이 파괴하고 있으므로.
그렇다면 현대 부르주아적 사유재산을 뜻하는가?
그러나 임금노동이 조금이라도 노동자의 재산을 창조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임금노동이 창조
하는 것은 자본, 즉 임금노동을 착취하는 재산, 새로운 착취를 위한 임금노동의 새로운 공급을 창출하는
조건이 없이는 증가될 수 없는 재산이다. 현재의 소유 형태는 자본과 임금노동의 적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제 이러한 적대의 양 측면을 검토해 보자.
자본가가 된다는 것은 생산에서 순수히 사적인 지위뿐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도 갖는다는 것이다.
자본은 집단적 산물이며 오직 많은 구성원들의 공동 행동에 의해서만 아니 궁극적으로는
전사회 구성원들의 공동행동에 의해서만 운동할 수 있다.
요컨대 자본은 사적인 힘이 아니라 사회적인 힘이다.
그러므로 자본이 공동 재산, 잔 사회 구성원의 소유로 바뀐다고 해서 개인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변화되는 것은 단지 소유의 사회적 성격뿐이다. 소유는 그 계급적 성격을 잃는다.
이제 임금노동을 보자.
임금노동의 평균가격은 최저임금 즉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겨우 생존하게 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존수단의 양이다. 그러므로 임금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전유하는 것으로는 단지
그 생존의 연장과 재생산만을 충족시킬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결코 그러한 노동생산물의 사적
전유를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생활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것일 뿐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잉여를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오로지 그러한 전유의 비참한 성격을
제거하고자 할뿐이다. 그러한 전유 하에서 노동자는 단지 자본을 증대시키기 위해 살아가며
지배계급의 이익이 요구하는 한에서만 살아갈 것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산 노동은 축적된 노동을 증가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반면 공산주의사회에서
축적된 노동은 노동자의 생존을 넓히고 풍요롭게 하며 촉진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사회에서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지만 공산주의사회에서는 현재가 과거를 지배한다.
부르주아사회에서 자본은 독립적이고 개성을 갖는 반면 살아 있는 사람은 종속적이고 개성을 갖지 못 한다.
부르주아는 이러한 상태의 폐지를 개성과 자유의 폐지라고 말한다! 그것은 옳다.
그것은 바로 부르주아적 개성, 부르주아적 독립성, 부르주아적 자유의 폐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므로.
현재의 부르주아적 생산조건하에서 자유라 할 때 그것은 자유거래, 자유매매를 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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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철학의 견지에서 또는 일반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견지에서 나오는 공산주의에 대한 비난은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도 없다.
인간의 관념, 견해, 생각, 한 마디로 인간의 의식이 그의 물질적 존재조건, 사회관계, 사회생활이
변함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그리 깊은 직관이 필요한가? 사상의 역사는 바로 물질적
생산이 변화하는 정도에 따라 정신적 생산이 그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항상 지배계급의 사상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를 변혁하는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곧 낡은 사회 내에서 새로운 사회의 요소들이 창조된다는 사실, 낡은
사상의 해체는 항상 낡은 존재조건의 해체와 보조를 같이 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고대세계가 마지막 진통을 겪고 있을 때 고대종교는 기독교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또 기독교
사상이 18세기에 이르러 합리주의 사상에 굴복했을 때 봉건사회는 당시의 혁명적 부르주아지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종교적 자유와 양심의 자유라는 사상은 단지 지식의 영역에서도 자유경쟁이 지배한다는 것을 표현할 뿐이었다.
흔히 이렇게들 말한다. "의심할 바 없이 종교적, 도덕적, 철학적, 법적 사상은 역사발전과정에서
변형되어 왔다. 그러나 종교, 도덕, 철학과 정치학, 법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항상 살아남았다."
"그밖에도 자유, 정의 등 어떠한 사회에도 공통적인 영원한 진리들이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영원한 진리, 모든 종교나 도덕을 새로운 토대 위에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폐지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는 과거의 모든 역사적 경험과 모순적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비난은 어디로 귀결되는가?
모든 과거 사회의 역사는 계급적대, 각 시대마다 다른 형태를 취했던 적대의 발전사였다.
그러나 그 형태야 어떠하던 과거 모든 시대에 공통적인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곧 사회의
어느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착취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다종다양하더라도
과거 시대의 사회적 의식은 계급적대가 모두 없어지지 않으면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일정한 공동형태
또는 일반관념의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은 극히 당연한 것이다.
공산주의혁명은 전통적 소유관계와의 근본적인 결별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혁명의 발전은 전통적 사상과의 가장 근본적인 결별을 포함한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적 반론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자.
우리는 앞에서 노동계급에 의한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계급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것,
민주주의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임을 보았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에게 점차로 일체의 자본을 빼앗고,
모든 생산도구를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총생산력을 가능한 한 빨리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소유권과 부르주아적 생산조건에 대한 전제적 침해를 통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경제적으로는 불충분하고 무리한 듯이 보이지만 발전해 가는 가운데 스스로를 뛰어넘어
낡은 사회 질서에 대한 더 이상의 침해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조치, 생산양식을 전면적으로
혁명화하는 수단으로서 불가피한 조치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물론 나라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선진적인 나라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매우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1. 토지소유를 폐지하고 모든 지대를 공공의 목적으로 활용한다.
2. 소득에 대해 높은 누진과세를 적용한다.
3. 모든 상속권을 폐지한다.
4. 모든 망명자와 반역자의 재산을 몰수한다.
5. 국가자본과 배타적 독점을 가진 국립은행을 통하여 신용을 국가의 수중으로 집중한다.
6. 전달, 운송 수단을 국가의 수중으로 집중한다.
7. 국가 소유의 공장과 생산도구를 증대한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공동의 계획을 따라 토질을 개선한다.
8. 모두가 똑같이 노동의 의무를 진다. 특히 농업을 위한 산업군을 편성한다.
9. 농업과 제조업을 결합한다. 인구를 전국적으로 보다 균등하게 분배함으로써 도시와 농촌간의 차별을 점차 폐지한다.
10. 공립학교에서 모든 어린이를 위한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현존하는 어린이의 공장노동을 폐지한다.
교육과 산업적 생산을 결합한다. 등등 발전과정에서 계급적 차별이 없어지고 모든 생산이
광범위한 전국적 단체의 손에 집중되면 공권력은 정치적 성격을 잃게 된다. 이른바 정치
권력이란 본래 단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조직된 힘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와의 싸움에서 상황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계급으로서 조작하게 되면,
또 혁명을 통해 지배계급으로 자라나고 그 자체로 낡은 생산조건을 무력으로 없애버리게 되면
그 때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들 생산조건과 더불어 계급적대와 일반 계급의 존재조건을 없애버리게 될 것이며
또 그럼으로써 한 계급으로서 가지는 자신의 지배권도 폐지하게 될 것이다.
계급과 계급 적대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 우리 각자는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단체를 가지게 될 것이다.